애플이 USB C타입을 적용한 것은 왜 혁신이고 삼성 플립은 혁신이 아닌가

애플 라이트닝, USB

애플이 USB C 타입 적용이 혁신으로 볼 수 있는 이유와 삼성의 플립이 왜 혁신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혁신의 기준

먼저 혁신을 논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엄청 놀라운 새로운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실 혁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김치는 수천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치 케이크가 미국에서 잘 팔린다. 이건 혁신이죠. 반대로 김치 냄새가 나는 마스크를 만들면 이전에 없던 거지만 혁신은 아닙니다. 즉, 새롭다고 해서 다 혁신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이 새로움이 적용되기 이전의 상태와 심지어 적용하는 주체에 대해서도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움막에 사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움막을 개방하는 것, 이건 혁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왕이 더이상 주변 국가와 분쟁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위해 성문을 개방하는 것, 이것은 혁신입니다. 즉, 대단히 허용하기 힘든 사상적 장벽을 깼기 때문입니다.

2. 애플이 USB C를 왜 안썼는가?

애초에 애플이 왜 도입을 그렇게 미뤘는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은 다 알다시피 라이트닝 단자를 밀었습니다. 이런 하나의 단순한 ‘단자’가 아니라 이건 ‘표준’ 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기업간의 표준 전쟁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위의 그림들은 이전 비디오 테이프 시절 표준 전쟁의 예시입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때 베타맥스는 소니가 만든 표준이며 VHS는 경쟁사들이 선택한 표준입니다. 베타맥스의 성능이 더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결국 VHS 표준이 승리합니다. 이때 소니에게 타격이 상당했습니다.

그 뒤로 메모리 카드 역시 표준 전쟁의 사례가 됩니다. 현재는 SD카드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한때는 SD, CF, 메모리스틱 이렇게 3파장이었습니다. 이때 역시 메모리스틱을 주장했던 소니의 제품이 기술적으로는 더 우위에 평가되었습니다만 비싼 가격과 크기 등의 이유로 SD로 천하통일이 됩니다.

이런 표준 전쟁의 패자는 기업의 생사마저도 갈리게 됩니다.
(더 자세한 사례들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312357#home)

생사도 문제지만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기업으로서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표준 전쟁의 승리는 엄청난 이미지의 상승을 불러오거든요.

애플은 USB C 도입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기술 표준 측면에서 절대로 양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어떻습니까? 삼성전자는 표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양보할게 없죠. USB가 더 저렴하고 많이 사용되면 USB를 구매해서 쓰면 됩니다. 하지만 애플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이트닝의 강점과 노하우 개발을 통해 천하통일을 준비하던 표준을 갖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3. 애플의 USB 도입이 왜 혁신인가

위에 이미 거의 정답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애플은 자신들의 왕국의 담을 내어준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유럽연합의 정책적 거대한 압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던 자신들의 왕국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사정이 어떠하건 그들은 이것이 혁신이다. 라고 자기 위안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표준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팬들은 애플에 열광하고 있고 라이트닝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작은 불편은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애플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표현합니다. 9년 전부터 있던 기술을 도입하는게 혁신인가. 9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해도 이런 경우 혁신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애플이 기술적으로 패배한 것이었다면, 9년전 USB C 타입이 나왔을때 애플의 기업가치는 곤두박질 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9년전으로 돌아간다면 애플 주식부터 구입해야 하지 않나요? 즉, 애플은 정말로 USB C의 매력도와 아무 상관없이 그저 보편적 제품으로 통일을 주장하는 정부 기관에 의해 문을 개방한 사례이고 이를 기업 전략에 적극 활용하고 친환경이라는 전세계적 활동에 기꺼이 동참하는 차원이라면 혁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4. 그럼 삼성의 플립은 왜 혁신이 아닌가

자 여기서 위의 기준들을 다시 살펴봅시다. 새로움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새로운가를 넘어 혁신은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에 의해 주장될 수 있습니다.

봉골레 파스타로 유명한 100년 된 식당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전통 이태리 식당에서 백김치를 활용한 봉골레 파스타를 출시한다면 어떤가요? 대단한 혁신일 겁니다. 수천년된 백김치 인데 말이죠.

그런데 옆집에 슈퍼에서 백김치를 판매한다면 그건 혁신인가요? 아니죠. 이태리에서 백김치가 팔린다는 것이 다소 놀랍고 이슈는 되지만 그건 혁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슈퍼는 유통이 핵심이고 그 유통 안에 새로운걸 얹었을 뿐이고, 식당은 애초에 자신들이 가진 핵심 강점과 본질을 섭렵한 상태에서 조화를 상상할 수 없었던 요소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슈퍼가 김치를 발굴하는 프로세스와 유통이라는 본질에서의 혁신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즉, 테크 혹은 제품 이라는 그 유통 대상에 있어서의 혁신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삼성전자가 이태리 식당인지 슈퍼인지 정의를 해보고, 또 전화기가 접힌다는 개념이 어느정도의 무게인지 정의를 해보고, 또 접힘에 있어 핵심 기술들이 얼마나 내재화 된 부분인지를 정의해본다면,

  • 삼성전자는 기기 제조와 유통을 전문으로 하며, OS와 스마트폰 표준에 있어 주도적 위치에 있지 않음
  • 전화기가 접히는 개념은 기존에도 있던 개념이나 스마트폰이 접히는 것은 다소 새로울 수 있음
  • 힌지, 즉 기구 설계는 새로 했으나 표준이라 부르기 어렵고 핵심인 접히는 유리는 독일 기술을 구매한 것

즉, 종합적으로 슈퍼에서 백김치를 판매하면서 전시대를 조금 더 새롭게 꾸몄다. 정도의 느낌 아닐까요?

그럼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이 접는 전화기를 내놓는다면 혁신인가?

네 혁신입니다. 판단 근거는 위와 같습니다. 다만 지금 갤럭시 플립이나 폴드와 동일한 수준의 문제점과 완성도를 유지한다면 아무리 애플이라도 혁신이라 주장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고질적인 내구성 문제와 주름 등을 해소하면서 (심지어 자체 기술로) 접히는 아이폰이 나온다면 이는 혁신일 것입니다. 그럴 자격이 있는 기업이구요.

마치며

너무 사대주의 아니냐. 이런 평가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대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혁신에 대한 평가 기준이 저와 다른 분들도 계시겠지만 잘 돌이켜보면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기준을 가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삼성의 현재 성과를 보기좋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애플과 같이 혁신을 리드하는 기업으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자체 OS 조차도 못 만들고, 중요 칩들도 죄다 수입해서 쓰고 있는 기업이 어떻게 혁신을 리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며 삼성전자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절대로 기술 기업이 아닙니다. 유통 기업임을 만날 때마다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5 thoughts on “애플이 USB C타입을 적용한 것은 왜 혁신이고 삼성 플립은 혁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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