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언더라이팅은 왜 피할 수 없는가

— Oscar Health가 보여준 미래와 한국의 규제 과제

보험 산업은 본질적으로 ‘리스크’를 가격으로 바꾸는 산업입니다.
누군가의 질병, 사고, 사망 확률을 계산하고 그 불확실성을 보험료라는 형태로 환산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보험 언더라이팅은 20세기 초반의 통계적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평균 통계, 인구 집단 단위의 리스크 모델이 여전히 산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AI가 이 공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개인의 생활 패턴이 디지털화되면서,
보험사는 더 이상 ‘추정’이 아니라 **‘예측’**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AI 기반 언더라이팅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보험 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1️⃣ 보험 언더라이팅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보험 언더라이팅(Underwriting)은 위험을 미리 평가하고 보험료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수십 년간 이 과정은 통계와 엑셀 기반의 분석에 의존해 왔습니다.
연령, 성별, 흡연 여부, 질병 이력과 같은 단편적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리스크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첫째, 개인화가 불가능합니다.
같은 45세 남성이라 하더라도 운동 습관, 식단, 혈압, 수면 패턴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기존의 보험 모델은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평균적 위험’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단순화합니다.

둘째, 데이터가 정적입니다.
보험 가입 시점의 건강 상태만 평가하며,
그 이후의 생활 변화(운동, 체중감량, 복약 관리 등)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즉, 개인이 건강을 개선해도 보험료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과대평가된 위험에는 손해가, 과소평가된 위험에는 손실이 발생합니다.
결국 현재의 모델은 산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2️⃣ 왜 AI 언더라이팅으로 갈 수밖에 없는가

AI 언더라이팅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보험을 ‘과거의 평균 예측’에서 ‘현재의 데이터 해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 정확성(Accuracy): AI는 수천 개의 변수를 동시에 학습하여 개인별 리스크를 정밀하게 산출합니다.
  • 효율성(Efficiency): 자동화된 평가를 통해 언더라이팅 비용과 인력 의존도를 줄입니다.
  • 공정성(Fairness): 생활습관 개선이나 건강 관리 노력에 따라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험사의 수익성 확보를 넘어,
소비자에게 더 공정한 리스크 평가를 제공하기 위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AI는 단순히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정확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3️⃣ Oscar Health가 보여준 실험적 현실

AI 언더라이팅이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인슈어테크 기업 Oscar Health입니다.

Oscar는 2012년 설립 당시부터 보험사를 ‘기술 기업’으로 재정의했습니다.
가입, 청구, 진료 안내 등 모든 프로세스를 모바일 앱 중심으로 설계하고,
AI를 활용해 가입자의 건강 데이터를 예측 모델로 전환했습니다.

Oscar의 자체 AI 엔진인 Lucia는 가입자의 진료 기록, 약물 처방, 의료 이용 빈도,
그리고 건강검진 결과를 기반으로 의료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합니다.
이 예측 결과는 보험료 산정뿐만 아니라,
환자 맞춤형 케어 네비게이션과 의료 서비스 추천에도 활용됩니다.

즉, Oscar의 AI는 언더라이팅과 헬스케어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하는 디지털 언더라이터 역할을 합니다.


💡 그러나 완전한 AI 언더라이팅은 아니었습니다

Oscar의 시도는 선구적이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HIPAA(건강정보보호법) 제약으로 인해
모든 의료데이터를 학습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AI는 진료 기록 전체를 분석하지 못하고,
청구 이력이나 건강 설문 등 제한된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scar는 두 가지를 입증했습니다.
1️⃣ AI는 리스크 평가의 정밀도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
2️⃣ 데이터 제약이 있더라도 보험사가 기술 중심의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Oscar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리스크 예측 정확도를 20% 이상 향상시켰으며,
특히 만성질환 관리 비용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성과를 냈습니다.


4️⃣ 한국은 왜 아직 그 문턱을 넘지 못했는가

한국의 보험사들도 AI 언더라이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형 보험사들이 내부적으로 머신러닝 기반 리스크 스코어링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 의료법 제19조: 진료 정보의 2차 활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합니다.
  • 개인정보보호법 제23조: 건강정보를 ‘민감정보’로 분류하여 상업적 이용을 제한합니다.
  • 보험업법 제97조: 리스크 산정 시 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결국 보험사는 AI 모델을 학습시킬 만큼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으며,
AI의 예측 결과를 언더라이팅에 반영할 법적 근거도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언더라이팅은 여전히
‘나이 + 성별 + 병력’이라는 20년 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5️⃣ 규제가 풀리면 보험은 ‘건강 관리 산업’으로 진화합니다

AI 언더라이팅이 허용된다면,
보험의 본질은 단순한 ‘사고 보상’에서 **‘건강 행동 관리 서비스’**로 진화할 것입니다.

  • 건강검진 데이터와 웨어러블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리스크 점수를 산출합니다.
  • 점수가 개선되면 보험료를 인하하고, 악화되면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을 제안합니다.
  • AI가 개인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동적 언더라이팅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보험이 ‘리스크를 판매하는 산업’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산업’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Vitality는 고객의 운동·식습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행동을 유도하고 보상을 제공합니다.
Oscar Health는 의료 이용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케어를 제안합니다.
한국 역시 이 흐름을 피할 수 없습니다.


6️⃣ 결론: AI 언더라이팅은 유행이 아니라 숙명입니다

AI 언더라이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보험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구조적 생존 전략입니다.
정확한 리스크 산정은 보험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 그리고 개인의 건강 자산화로 이어집니다.

Oscar Health의 시도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AI가 리스크를 보다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역시 기술적 역량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데이터 접근성, 규제 완화, 그리고 신뢰 기반의 거버넌스입니다.

‘언제, 어떤 윤리적·법적 틀 안에서 시작할 것인가’
바로 그 시점을 결정하는 일이 각국 보험 산업의 미래를 가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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