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이노베이션 : 현업 경험의 시작 2

오픈이노베이션 현업 경험의 시작 2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번에는 오픈이노베이션의 학술적 정의와 한국 기업 환경에서의 독특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초기 CSR 위주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점차 여러가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참고 : 오픈이노베이션 : 현업 경험의 시작 1)

오픈이노베이션 대기업 프로그램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회의론 대두

물론 앞서 소개한 CSR 형태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기업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먼저 시작한 기업들 내부에서는 이전에 시작했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형태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들도 나타납니다. (제가 몸 담았던 조직 포함)

당시 회의적인 입장의 대표적인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final goal이 무엇인지 불명확함
  • 오픈이노베이션 조직에서 선발하는 기업과 현업 담당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음
  • 결론적으로 사업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 부족

그렇다고 오픈이노베이션 담당하는 조직에서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 오픈이노베이션 조직과 현업 조직간 의사소통의 기회가 없어 그들의 needs를 파악할 수 없으며 심지어 인터뷰 요청을 해도 최종 목표에 대해 공유를 꺼려함
  • 경영진을 통한 기업의 본질적 목표에 대해 공유받은 바가 없으며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목표를 담당 조직이 자체적으로 정의하는 것부터 어려움
  • 애초에 재원이나 조직적 연결고리가 CSR에서 시작하므로 CSR의 목표를 일부 달성해야만 함
  • 현업 담당자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부족(소위 갑질) 또는 밥그릇 싸움(소개 미팅에서는 관심없다고 한 뒤 따로 연락하는 일 등) 등 혁신 생태계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

기업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양새는 보여줘야 했기에, batch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계속해서 범위를 넓혀 커져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오픈이노베이션 담당 조직도 확대되었고, 투입되는 자원과 참여 기업의 수도 날이 갈 수록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어지간한 대기업 프로그램끼리는 겹치는 스타트업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스타트업들 입장에서도 초창기와 다르게 차별성이 나타나지 않아 꺼려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됩니다.

CSR vs Business

이렇듯 CSR의 태생적 성향을 갖게 되었던 우리나라 풍토에서 사업적 성과에 대한 회의론 그리고 도전적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되었습니다.

  • 시리즈 A 수준의 스타트업을 주 대상으로 하던 기존 방향에서 시리즈 B이상 스타트업 혹은 중형화 된 혁신 기업군까지 확대
  • 혁신적 이미지를 가진 대기업과의 제휴 모델 발굴
  • 현업과의 스킨십 확대
  • 완전한 CSR 성격의 프로그램 재기획

1) 중형 스타트업과의 협업

먼저, 초창기 스타트업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던 오픈이노베이션을 중형 이상으로 이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가동되는 스타트업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형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매출이 이미 발생하기 시작한 중소기업형 스타트업들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형 스타트업과의 협업 역시 쉽지 않았는데, 이미 자신들의 방향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터라 대기업의 방향에 맞춰주는 데에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고, 기존에 대기업이 마련해놓은 benefit (사무공간 지원, 데모데이 참여 기회 등) 들이 전혀 맞지 않는 기업인 경우도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참신해 보이나 안정성 부분에서 현업 담당자에게 챌린지 당할 일은 없어진 좋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잘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었습니다.

2) 대기업과의 제휴 모델

오픈 이노베이션이 말 그대로 우리 영역을 오픈한다는 개념이라면 반드시 스타트업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아이디어. 매우 참신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접근법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당시 대부분의 대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터라 타 대기업에서 오는 제휴 제안에 경계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batch 프로그램이지만, 공모할 때 이름만 같이 붙여서 공모하고, 각각 심사해서 각 사가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브랜드 제휴 정도의 모델만 논의되게 됩니다. 즉, 여전히 대기업과 초기 스타트업간의 협업인 모델에서는 전혀 벗어난 형태는 아니게 됩니다.

다른 대기업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걸 깨닫기도 했는데, 바로 타 대기업과 협업할 때에는 오픈이노베이션 조직에 연락을 하기보다는 타 기업의 현업 부서에 아이디어 제안을 하는 경우가 더 원활했던 것 같습니다.

현업 부서는 실제 실행할 능력이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피드백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 또한 많은 대기업들이 외부 제휴 채널을 오픈이노베이션 조직이 총괄하도록 일원화하는 경우도 생기고 하면서 쉽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3) 현업 조직과 스킨십 확대

이전에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공모한 뒤 모집된 기업을 심사하는 자리에 현업 담당자를 몇 명 초대하고, 몇 달 뒤 프로그램 종료 시기에 현업 담당자가 다시 와서 현업 가능성을 채점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참여였습니다. (또는 중간에 가끔 미팅 어렌지 정도)

이런 상황이다보니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들이 개인적으로 친한 현업 담당자를 읍소해서 초대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것도 누적되다보니 점차 초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도 참여하고 나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유지되기 힘든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현업 조직이 스타트업을 자주 보게 해야겠다는 의견으로 모여지게 됩니다. (당시엔 스타트업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입니다.)

주기적으로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세션을 만들었고, 현업 조직은 참여하면 필수 교육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인사팀과 조율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스타트업을 만나는 일이 불필요한 일이 아니라, 1시간 듣고 오면 4시간 짜리 필수 교육 시간이 만족되는 아주 가성비 좋은 시간이 되고, 행사장에 오면 맛있는 간식도 제공하는 등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현업과의 스킨십은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도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협업 기회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약했습니다.

이때 많이 배우게 된 것이 바로 현업 담당자들의 솔직한 피드백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어쩌다 한번 보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분들도 솔직한 의견을 가감없이 저희에게 전하기 어려워했는데, 자주 보게 되고, 또 자신들도 즐겁게 참여하는 자리가 되자 오히려 솔직한 의견을 가감없이 전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안이 매력적이긴 한데.. 사실 우리가 일을 외부에서 아는 것처럼 시스템으로 하지 못해서, 기술을 적용할 데가 없어요.”

“경쟁사 대비 좋은 회사라고 하는데, 사실 경쟁사에 있는 기업이 이미 내년도 예산이 배정되면 협업하기로 내정된 상태라 저 내용을 내부에 보고할 수도 없고 바뀔게 없어요”

“자신들만 가진 데이터인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 저 데이터 우리도 공유 받은 거에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핵심 관계 기업들은 다 갖고 있을 거라서 저 내용은 거짓말에 가까워요”

“우리가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쓰는 사업 영역으로 보여지지만 사실 마케팅 예산이 거의 없어요. 차라리 외부 IP 라이선스 비용은 쓸 수 있는데, 이런 식의 마케팅 제휴는 예산 자체가 없어요.”

등등. 이전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속 사정을 들을 수 있었고, 어떤 경우는 우리 자체적인 문제가 있거나, 또는 조금 미리 대화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거란 것을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현업 조직과 대화의 시작 시점을 앞당기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4) 온전한 CSR 프로그램 기획

앞선 프로그램들이 오픈이노베이션이란 이름을 단 CSR이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CSR 다운 프로그램도 기획을 준비해봤었습니다. 오히려 CSR로 확고한 정체성을 나타내니 기획이 더 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생태계 전반에 걸친 pain point들을 해소해줄 수 있는 역할이 된다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에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구성을 그려보기 시작합니다.

비록 런칭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재밌고 유의미해 보이는 기획안들이 다수 작성되었었습니다.

맺으며

지금도 저는 현업에서 오픈이노베이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오픈이노베이션이란 단어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미 단어에 대해 굳어진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단어이자, 기업의 핵심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실행 전략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기업의 핵심을 건들지 않고 실행해보고자 CSR로 작게 시작하다보니 여러가지 어긋나는 일이 생겼고, 기업의 근본인 이윤추구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어지간한 대기업은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고, 간접투자 금액은 천문학적으로 누적되어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batch 프로그램으로 한정되지 않으려면 이제 제대로 활용해봐야 하는 때가 되어가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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